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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주. 명성황후 생가터에서 (시인 都雲 송영기)

페이지 정보

작성자 홈지키미 작성일20-08-07 13:03 조회114회 댓글0건

본문

[서울=글로벌뉴스통신]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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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명성황후가 9살부터 16살에 왕비로 간택될때까지 살았고, 여기서 왕비로 책봉된 아버지 

소유의 조상 민유중의 옛집.근년에 서울에서 여주로 이건하였음)

         

        여주, 명성황후 생가터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송 영 기

 

잠자는 누에처럼  뒷산은 온화하고

앞들엔 점봉천과 초생달 아미(蛾眉)안산(案山)

평온한 터에 나셨는데 

앞길 어이 험난했나

 

묘막집 살던부모  큰바위에 소원빌고

감고당 선대(先代)마마 꿈속 현몽 뜻새김에

의지할 가지없음이 

()이되어 돌아왔네

 

都雲(도운) 宋永起/시조시인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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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(누에처럼 한일자로 뻐쳐 있는 낮은 구릉인 생가터 바로 뒷산,오른쪽끝에 서울에서 옮겨세운 감고당, 그옆 에 소원바위, 그리고 중간에 작은 마을, 오른 쪽끝 산아래에 명성황후가 태어난, 민유중의 묘막 큰 산림집이 있다)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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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* 소원바위 : 명성황후 생가 옆에 있는 둥글고 큰 바위로 

    아버지 민치록이 1남2녀 자식 모두 일찍죽어 부부가
    정성을 들여 기도하고 53세 때 무남독녀 민자영을 낳았다

() *고종황제 (1852 -1919) : 아명 命福, 본명 李熙 이며

       12세에 왕이 되고, 1866(고종 3)에 왕비를 맞음.  



     * 명성황후 (1851-1895)  : 아명 민자영, 8세까지 여주

        에서 살다가, 아버지가 죽은후 아버지가 물려받은 조상

         민유중의 집이었던 서울 감고당 저택에서 어머니와

         올라와 8년간 살았다. 이 집에서 16세에 왕비로 간택되니,

         고종보다 1년 연상임

       아버지 민치록(閔致錄)은 서인의 거두인 민유중의

         6대손으로 문음(門陰)으로 장릉참봉,현감,현령,군수등을

         지내다가 여주로 낙향하여 민유중의 묘막에서 살았다.

     

    * 당시 서인 西人의 거두  좌의정 민정중 (閔鼎重)의 아우인

        민유(閔維重) 대학자 우암 송시열 (尤庵 宋時烈) 

           동춘당 송준길 (同春堂 宋俊吉)의 문하생 이었다.(송준길의 딸과 혼인 인현왕후를 낳았다)

 

    * 감고당 (感古堂) : 숙종계비 인현왕후가 친정 아버지
      민유중을 위하여 안국동에 지어준 집인데, 장희빈의
      모함으로 폐비된후 유폐되어 5년간 살았고,그후 명성황후
      가 8세후 16세에 간택될때까지 살았던 집이다.
      처녀시절 여기서 살때 인현왕후가 꿈에 나타나 " 너는 장차
      내 자리를 대신할것"이라 하였다함.
      지금은 감고당을 서울 안국동,덕성여대를 거쳐 여주의 민황후
      탄생지로 재이전하여 이건하였다.

출처 : 글로벌뉴스통신GNA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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